스크린인쇄 발전과정

1.스크린인쇄의 국내도입

인류문화는 인쇄라는 장치를 통하여 비로소 형상화되고, 인쇄기술을 통하여 그 원숙함을 나타낸다. 또한 인쇄기술은 그 시대, 그 국가의 문화의 척도를 나타내며, 영원한 역사의 증인이 된다.
우리 민족은 일찍이 세계에서 활자 인쇄를 최초로 창제한 자랑스러운 긍지를 지니고 있으며, 나날이 변모하는 우리나라 인쇄기술은 세계화의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여 새로운 비전(vision)을 제시하면서 정보화 사회의 한 축을 담당하며 발전하고 있다.
스크린인쇄 업계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동안 온갖 어려운 경영상의 시련을 겪으면서도 꾸준한 노력으로 성장하여 오늘날에는 기술이나 인쇄물 품질 면에서 선진국 못지않은 높은 수준에 이르고 있음은, 스크린 인쇄인 모두의 노력과 우리나라 스크린인쇄문화의 향상에 대한 책무와 자부심을 일찍부터 함께 걸머지고 땀 흘려 노력한 오늘날의 원로·선배 스크린 인쇄인들 덕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스크린인쇄가 국내에 처음 도입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50여 년 전으로 다른 업종에 비한다면 역사가 매우 짧다고 볼 수 있다. 초창기를 대량 1960년대로 보고, 그전에 이미 시작했다는 얘기도 있지만, 사실상 국내에 스크린인쇄 업계가 태동하기 시작한 것은 1962년경이라고 볼 수 있다.

2.초기의 스크린 인쇄인

오윤기·한영우·박복만·진영주·김광운·양봉석씨 등 자타공인의 스크린업계 원로들이 안방기업식의 스크린 인쇄업을 처음 시작하게된 것이 1960년대 초반이다.
그 당시에는 대개 명주천(Silk)으로 판을 만들어 사용했기 때문에 실크(Silk) 인쇄라는 개념이 강했고, 스크린망사 대신 약 80목 정도의 여성용 치마 안감 등을 사용하여 스크린 판을 직접 만들어서 못을 박아 종이를 바르고, 트레이싱 페이퍼(tracing paper) 등을 커팅 하여 주로 사용하였으며, 잉크는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오는 것과 시중의 일반 페인트 등을 이용하여 포스터·완장·헬멧 등에 많이 사용하였다고 한다.

부산 제일그랜드 오윤기 사장의 경우는, 일찍이 육군 인쇄공창에서 군 생활을 할 때, 어느 날 디자인에 관련된 외국 잡지를 보다가 스크린인쇄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여 제대 후 막 바로 스크린인쇄 분야에 뛰어들어 1962년부터 시작하게 되었다고 하고, 한영우 한영사 사장은 자유당 시절 말기에 미 대사관에 자주 출입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당시 비닐류 소재에다가 인쇄를 하려고 해봤으나 상당히 힘든 점이 많아 백방으로 그 해결책을 알아보고 여러 방법을 연구한 결과, 역시 치마안감 등에다 갖풀(아교)을 사용하여 뜨거운 물에 녹여서 제판하는 법을 알게 되어 주로 조립형 전축, 다이얼판 등에 인쇄하였으며, 그 후 울라노사 로부터 커팅필름(NU필름)을 구입하여 본격적인 스크린인쇄업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한편, 유리 초자(硝子)쪽은 박복만, 김광운 씨와 삼광초자에 근무했던 김영삼 씨 등이 일본 제품의 인쇄물을 보고 유리 초자류 인쇄기법을 배워 국내에 처음 보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사인쇄는 삼흥전사 임헌융 사장에 의하면, 1960년대 초에 이미 당시의 도자기 회사 등에서 전사지 인쇄방법이 개발되었으며, 이 때 시중에는 파라솔·넥타이·양말 등에 스크린인쇄를 하였고, 유산지에 세락 수지를 도포하여 건조 후 칼로 떼어내서 제판하는 방법을 이용했다고 한다.
요업용 스크린 전사인쇄는, 1962년 당시 대구(大邱) 거주 장임상 씨가 견본인쇄를 시도하였으며, 1965년 한·일 기술제휴로 김진배 씨가 일본에서 1년간 기술연수와 함께 기계를 도입, S2인쇄기로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그 후 인천 중앙도자기(주) 임성덕 씨도 시도했다고 알려졌고, 또한 한일회담 후 국립마산요업센터에서도 독립체제 전사공장을 설립하였으나 실패하고, 1973년도 요업전사 독립 업체인 전사개발 업체를 창업하여 호황을 누렸고, 중간에 ‘코벨‘이란 업체가 창업하였으나 실패하였다.

양봉석 현대스크린인쇄기술 연구소장은 1963년경 서울 동대문시장 부근에서 ‘백합사’란 상호를 가지고 조그맣게 출발하면서 스크린인쇄 분야와 인연을 맺어, 그 당시 올이 굵은 망사에다 갖풀(아교)을 붓으로 발라서 판을 떴다고 한다.
그 후 스크린인쇄는 그래픽 디자인이 보급된 1960년대 후반부터 전문 상업성을 띠게 되었다고 볼 수 있고 이 때 상업인쇄의 POP(Point of purchase) 개념을 스크린인쇄로 처음 시도한 사람은 동양종합공예사의 배종수 사장으로 알려져 있다.

다음으로 1960년대 스크린인쇄 기자재 보급에 앞장섰던 분들을 살펴보면, 1965년에 수입상을 차린 지금의 동방화공(주) 방영환 사장이 당시 고마졸, 각종 안료, 망사(일본 NBC제품, 현재 Doyo Corp)와 독일 DEGUSSA사 요업안료, 금액 라스타 등을 수입하여 국내의 초자인쇄공장에 공급했다고 한다. 또한 방영환 사장은 협회 설립 이전부터 SPAI 전시회를 참관하는 등 해외의 우수한 재료들을 국내에 공급하는데 큰 기여를 했으며, 거의 같은 시기에 이향우씨도 잉크제조 외 기자재 수입을 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스크린인쇄 기계 쪽은 용암전사 백은경 사장이 일본에서 귀국하면서 평면스크린인쇄기인 흡착기(일본 미농지업사 제품) 1대, 박스 견본용 곡면인쇄기 1대, 스퀴지 연마기 1대, 필름 밀착기 1대 등을 도입한 것이 시초였다고 하는데, 같은 시기 대한도자기에서도 인쇄 기계를 도입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또한 혜성상사 하만민 사장이 일본에서 스크린잉크를 수입하여 재료 공급의 가교 역할을 하였다.
스크린인쇄용 국산 잉크는 대일잉크의 김태문 사장과 대양화학공업의 신정환 사장 등이 개발하여 보급하기 시작했는데, 일찍이 건설화학(주)에 몸담았던 부산 삼성화학공업 오주언 사장도 그 중 한 분이다.
1968년 4월 부산 제일그랜드 오윤기 사장이 도일하고, 같은 해 7월 양봉석 씨도 도일하여 직접 보고 느낀 일본 스크린업계를 국내에 소개하는데 일익을 담당했고, 이듬해인 1969년에 오윤기 사장이 ‘제1회 스크린인쇄 동인회전’을 부산에서 개최하여 우리나라 스크린인쇄 제품의 우수성을 대외적으로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양봉석 씨는 1970년에 「스크린인쇄와 응용기술」이란 책을 발간하여 업계 발전에 중추적 역할로 기여하였다.(양봉석 씨는 다시 1991년에「신 스크린 인쇄기술」이라는 책을 발간하였다)
이때를 계기로 점진적으로 산업인쇄 분야의 영역이 증대되어 스크린인쇄의 다양하고 특징적인 인쇄기법이 널리 소개되기 시작하였다.

스크린인쇄가 오늘날 산업인쇄로 발판을 구축하기까지는 이처럼 1960년대 초 국내에 스크린인쇄 기술과 기자재를 처음 들여온 원로들의 노력이 밑바탕 깊숙이 깔려있다.
업계 원로들은 오늘날의 첨단인쇄 산업의 한 축으로써의 스크린인쇄를 이 땅에 뿌리내리게 한 선구자들이었다. 1960년도부터 사진감광 제판법(PVA)에 의한 제판방법이 국내에 소개되어 실용화되면서부터 스크린인쇄 전문업자들이 많이 생겨나게 되었고, 하나의 신산업으로 새로운 발판을 구축하게 되었다.

스크린인쇄 업계는 본 협회를 통한 국제스크린인쇄협회(SPAI) 가입을 계기로 기자재의 개발 및 보급이 활발하게 진전되었는데, 1980년대 후반에 들어서 PCB 등 전자부품의 기능성 인쇄 및 첨단산업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게 되어 산업인쇄로서 스크린인쇄업계는 시설자동화 및 기술 혁신 등으로 대기업화로 변모하였다.
2000년대의 FESPA 가입을 기점으로 미국시장뿐 아니라 유럽시장의 선진자재가 수입되었으나, 현재는 오히려 우리나라의 우수한 인쇄 및 후가공 기계들이 중국, 동남아, 유럽등지로 많이 수출되고 있다.
이는 협회의 젊은 기업주들의 진취적이고 도전적인 정신에서 이루어진 성과라 하겠다.